2013년 9월 25일 수요일

멜번 시티를 밤거리

오늘은 무작정 밖을 나갔다.
느즈막하게 표도 아깝고, 그냥 시티를 돌아다니고 싶어서 나가봤다.

당시에 멜번에서는 F1 자동차 경기가 개최되고 있었는데 밤에 거리에서 TV를 보는 사람과 술마시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체적으로 시티는 6시 이후에는 무척이나 한산하다. 말그대로 시티는 일만 하는 곳인것 같아보였다.
북쪽에는 이탈리아레스토랑이 즐비한데 그곳에만 사람들이 좀 있을 뿐..
혼자서 밤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멋진 사진을 찍었다. 찍는 사진마다 예술이다. 오래되 보이는 건물들도 멋져보인다. 영국을 가보진 않았지만 이곳과 비슷하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밤거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산하며, 위험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빅토리아 항구

어느날 문득 해변이 보고 싶었다.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항구로 나갔다.





















멋진 항구, 멋진 건물들..

정말 이날은 나의 기분이 착찹하기만 했다. 온지 이제 1달인데 멀 먹고 살아야 될지..

영어는 빨리 늘 수 있을지 외국인과 만나야 겠다는 생각만 했다..

영어만 듣기로 결심했다.



12분의 1의 시간이 지났다...

교회캠프



인도출신의 친구 무척이나 내성적이고 착한 친구며, 멜번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수재였다.





 

 팀명 체스트넛..

모두들 영어를 잘 못하는 나를 열심히 도와주었다.





축구 야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팀원들..



 





중국, 대만, 사모아, 싱가폴, 남미, 한국..

우리팀은 유난히 다국적 팀이었다. 다들 영어로 하나가 되고 잘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으로 외국인들과 생활을 해본 경험이었다. 벙어리와도 같은 나에게 단어를 하나하나 알려주면서 퀴즈도 풀고 운동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홈스글랜



부엌의 쪽방이었다. 첫 인상은 아담하고 아늑해보였고, 특히 책상이 맘에 들었다.

난 아저씨에게 책상을 양보했다.

밤에 잠을 자면서 아저씨의 인생역정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는 아마추어 마라토너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아내는 속샘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아들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마땅히 능력이 없으셨던 아저씨는 홀로 호주에서 정착하겠다고 오신것이었다. 나보다 일주일 먼저 와계셨고, 무척이나 영어가 서툴었다.

아저씨의 일과는 영어공부와 성경책, 그리고 이따금 한국으로의 전화였다.

한국에 전화를 하고 나면 약간 분위기가 다운되어서 슬퍼보이기까지 했다.

아저씨와 생활을 하다보니 나도 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대신에 아저씨를 위해서 이런저런 재료를 챙겨서 밥을 해드리곤 했다.



한국에서 정확하게 현금을 3000불을 가지고 왔는데 이곳에서 일주일을 생활하면서 2500이하로 떨어져버렸다. 이대로 가다간 두달도 못되서 돈이 바닥이 나버릴 것 같았다.

난 10$의 행복이라는 부제로 일주일을 살아봤다. 중간에 캠프를 다녀오기 위해서 50달러를 사용한 것을 빼면 거의 돈을 쓴적이 없다. 무작정 영어 공부와 동네 산책만 다녔다.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인사하고 길을 물어봤다.

how can i get to....

where is the.....



무조건 물어보고 들어봤다...

영어는 자꾸 써야 는다고 하는데 난 영.. 안느는 것 같았다..

weekly 기차표를 사서 rmit 프리스쿨에 다녔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났고, 공짜지만 영어 강습도 받을 수 있었다. 영어 강의가 끝나면 근처에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봤다.





쉐어하는 집의 다른 방 식구들

모두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들과 가끔씩 부엌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하고, 음식도 나누어 먹기도 했다.



멜번은 무척이나 쌀쌀한 도시였다. 우리나라와 반대이기는 하나 호주의 남부이기에 겨울이란게 있었다.

호주의 북쪽은 적도와 가까워 일년내내 여름이라고 했다.



겨울은 3~4도가 최고로 추울 때이고, 햇빛이 내리쬐면 바로 봄날씨가 되는등.. 날씨가 엄청나게 변덕스러웠다.

오리털 파카를 입고 가던 사람들이 보이는가 하면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기도 하고, 한겨울인데도 도서관 앞에서 벗고 썬텐을 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아직은 적응이 안되는 때였지만 꾿꾿이 공부하고 영어를 배워야 겠다고 다짐했다.

Bentleigh Station


역에 도착하자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Bentleigh 역은 존1과 2의 끼어있는 곳이었다.존1+2 지역이라고 함
호주는 존 3까지 있는데 시티에서 멀수록 기차표값도 비싸고 인적도 드물다.

도착하고 나니 역에는 온통 낙서가 가득했다. 낙서가 그래도 보기는 좋으니 다행이지만 지저분한건 어쩔 수 없다. 밖으로 나오자 느낌이 장난감 기차같은 느낌이다. 나오는 입구도 아기자기하고..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쉐어 구하기

엊그제 신쳥한 ANZ카드가 아침에 도착했다.

등록을 해야 하는데 영어로 전화를 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간신히 카드번호 불러주고 sorry, pardon을 연발하며 간신히 등록을 했다.

덕분에 핸드폰 비만 엄청나게 써버렸다. 호주의 핸드폰비용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비쌌다.

차라리 국제전화를 할망정 시내전화가 국제전화만큼 나올줄이야..



카드를 개통하고서 300$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집에서 더이상 머무를 수가 없어서 빨리 방을 구해야 한다.




벤틀리 한인교회에서 운영하는 무료 숙소에서 한 컷

일주일을 넘겨서 다른 집을 구하기 위해서 나서는 길






빨리 방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얼굴이 어두웠다. 방을 구하기 위해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어학원의 벽에는 빽빽히 쉐어 정보들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학원을 중점으로 돌아보았고,

한 국 식품점에서 신문을 하나 들고서 집에 와서 체크를 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는데 다행이(?) 한국사람이었다. 존2라는 지역의 호손대학교 근처 홈스글랜이란 지역이였는데 deposit 180$에 206$ 랜트비 총합 386$였는데 180$는 나중에 돌려받는 돈이구.. 이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존1지역에 근접했고, 존1지역으로서 시티까지 1주 정액요금이 26.7$였다.

시티까지 차비가 3.2$ 여서 밖에 자주 안나가면 그렇게 비싸진 않았다.



일단 연락이 되어 다음날 방을 보러 가기로 했다.

비자발급과 은행계좌 만들기

2006년 4월 6일 목요일

숙소는 어제부로 만료가 되었지만 방을 못구했다는 핑계로 이틀을 더 연장했다.

빨리 방을 구해야 할 판이다. 나의 룸메이트도 같이 나가야 되었는데 방을 같이 구하자고 하신다.

약간 떫더름하긴 했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2006년 4월 10일 월요일
월요일이다. 할일이 많다. 일단 혼자서 시티로 나갔다.
인터넷으로 준비한 개좌개설법과 멜번 이민성의 위치를 적은 종이를 들고 무작정 기차를 탔다.

기차의 창밖에 보이는 날씨는 꽤 흐렸다. 호주 이민성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Paliament station으로 가야 한다. 시티가 원형이라서 기차가 뱅글뱅글 도는데, 도대체 어디서 내려야 되는지 햇깔려서 시간이 좀 걸렸다.
역을 빠져나오자 마자 이민성을 찾아봤는데, 호주 이민성은 꽤 눈에 띌 정도로 컸고, 눈에 잘 띄었다. 갑자기 첫 날 만났던 그 분에게 전화가 와서 공짜 RMIT 영어회화 반이 있다고 등록하자고 전화가 왔는데 약속이 내일로 미뤄졌다. 일단 오늘은 비자도장받고 계좌 만드는게 우선이란 생각에 모든게 귀찮았다.

이민성에 갔더니 사람은 많았으나 엄숙한 분위기에 조용했다. 대부분 백인들보다 유색인종들 뿐이었으며, 조용히 TV화면의 번호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 대기하는 중이었다. 난 입구에 있는 분에게 도장을 받아야 되는줄 알고 말을 걸었다. 'I want to get a stamp'.. 내가 왜 want를 썼을까 would를 써야 되지 않을까 한참 생각하고 있는데.. 그분이 여권을 한참동안 살펴보고 모니터를 보더니만 번호표를 준다. 아 대기하는거 였구나.. 많은 이민자들 틈에서 나의 차례를 기다렸다. 30분쯤 기다렸을까?

내 번호가 뜨고, 난 영어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들었다. 머라고 말해야 되나..
인터넷으로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물어보는 말도 많고 해야 할 말도 많다던데..

영어공포증이 밀려와 그냥 멍한 생각에 주사맞는 어린아이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외국사람 틈에서 비집고 앉았다. 순서가 되어 난 i should get the visa..라며 여권을 내밀었다.

안내하시는 분은 다시 또 2차 번호표를 줄 뿐 아무말도 안했다.

다시 유리벽으로 막힌 다른 방에서 또 다른 줄을 섰고 아무말도 필요없이 내 여권에 큼지막한 스티커만 떡하니 붙여주고는 가라고 한다. 이렇게 쉽다니...

쉽구만.. 이제야 난 호주에 도착을 한게 됐다..휴~


은행계좌 개설도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뽑은 가상시나리오 대본을 들고, 무작정 도심 한복판으로 걸어가며 ANZ은행을 찾았다. ANZ은행이 유명하고 지점이 많아서 그런지 길거리에서 찾기는 힘들지 않았다.

입구에서 처음 본 은행의 모습은 무슨.. 썰렁한 것이.. 은행의 구조가 한국과 너무나도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핸드폰 as센터 같은 느낌? 1:1로 상담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창구는 2개 밖에 없고, 대부분 상담원과 앉아서 상담하고 있다. 이거 얼굴보고 100% 프리토킹을 해야 하는거구나.. 쩝..


나도 그 중 한 자리에 앉았다. 인도사람 같았고 남자였는데 말이 또렷해서 대체적으로 느낌만으로도 들리긴 했다. 상담받으러 자리에 앉고선 가져갔었던 대사를 두 세마디 했다. 그 중에 create account란 말고 있었는데 행원은 듣자마자 머라머라 알아서 설명하더니, 설명서를 보여주며, 은행에 대해 소개하고, 입금서를 보여준다. 아 초기 돈을 넣으라는 뜻이구나 하고, 선뜻 가진 현금을 줬더니 처리를 해준다.

더 이상 생각도 안나고, 머리가 멍한데. 그쪽에서 몇마디 한것을 그냥 yes했다.
종이를 거내주더니 펜으로 설명을 해준다. 2500불을 예금하기로 하고 돈을 내줬다.
역시나 긴장할 필요도 없이 간단히 끝났다. 말도 몇마디 안했는데..ㅎㅎ

목표로 했던 두 건의 일이 끝났다.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은 다 영어로 할텐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된다. 이겨내야 한다!!!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